
I. 프롤로그: 동료인가, 직원인가? 그 무거운 이름
법인 설립, 사업자 등록, 통장 개설까지. 지난 몇 달간의 여정은 오롯이 '나'와 '회사'라는 두 개의 점을 잇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회사에 첫 번째 '타인'을 들이는 순간이 왔습니다. 바로 '채용'입니다.
함께 밤새워 아이디어를 나누던 '동료'였어도 이제는 법인 설립에 따라 정식 '직원'으로 채용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본래의 채용절차에서는 서류평가, 면접 등이 있지만 스타트업의 첫 시작이기 때문에 법인 설립 이전부터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한 동료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기 위한 절차만 담기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인 '근로계약서 작성'입니다.
지금까지의 삽질이 '나 혼자'의 생존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우리'의 역사를 쓰는 진짜 스타트업의 시작입니다. 이 글은 한 명의 직원을 우리 팀의 일원으로 맞이하기 위해 대표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던 인사(HR)의 가장 첫걸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II. 근로계약서, '좋은 게 좋은 것'은 없다
"우리는 스타트업이니까, 이런 서류는 나중에 챙겨도 되지 않을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표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위험하고 순진한 착각입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명백한 위법 행위입니다.
근로계약서는 단순히 형식적인 서류가 아닙니다. 이는 회사와 직원이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모든 노무 이슈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입니다.
근로계약서, 이 5가지는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표준근로계약서'를 활용하면 대부분의 항목을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래 5가지 핵심 항목은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 필수 기재 항목 |
무엇을 적어야 하나요? | 스타트업을 위한 Tip |
| 1. 임금 | - 구성항목: 기본급, 식대, 연구수당 등 - 계산방법: 월급인지, 시급인지 - 지급방법: 매월 25일, 본인 계좌 이체 등 |
식대를 비과세 항목(월 20만 원 한도)으로 설정하면, 직원의 소득세와 회사의 4대 보험료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
| 2. 소정 근로시간 |
- 시업 및 종업 시각: 예) 10:00 ~ 19:00 - 휴게시간: 예) 13:00 ~ 14:00 |
8시간 근무 시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은 법적 의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더라도, 핵심 근로시간(Core Time)을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
| 3. 휴일 | - 주휴일: 1주 개근시 부여 유급휴일 (보통 일요일) - 법정공휴일: '빨간 날'의 유급휴일 보장 여부 |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정공휴일 유급휴일이 의무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는 법정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한다'고 명시하면 훌륭한 복지가 됩니다. |
| 4. 연차 유급휴가 |
근로기준법에 따라 부여한다는 내용을 명시 | 1년 미만 근로자도 1개월 개근 시 1일의 연차가 발생합니다. 이 부분을 명확히 안내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상시 5인 미만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 후술) |
| 5. 근무 장소 및 업무 내용 | - 근무 장소: 예)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OOO - 업무 내용: 예)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기획 등 |
"회사의 필요에 따라 근무 장소 및 업무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면, 향후 조직 변경 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
III. 스타트업의 생존을 지키는 조항
표준근로계약서가 최소한의 법적 의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조항들은 우리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적 조항'들입니다.
1. 수습 기간: 서로를 위한 '탐색전'
- 무엇을 명시해야 하나?: 근로계약서에 "입사 후 3개월은 수습 기간으로 한다"와 같이 명확한 기간을 설정해야 합니다.
- 급여: 1년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수습 기간 3개월 동안은 최저임금의 90%까지 지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급적 100%를 지급하는 것이 인재 확보에 유리합니다.
- 주의할 점: 수습 기간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해고할 수는 없습니다. 정식 채용을 거절하려면 '업무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며, 이 역시 법적으로는 '해고'에 해당합니다.
2. 비밀유지 의무: 우리 아이디어를 지키는 방패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자산은 '아이디어'와 '영업비밀'입니다. 직원이 퇴사하면서 회사의 핵심 정보가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 무엇을 명시해야 하나?: "근로자는 재직 중 또는 퇴직 후에라도 업무상 알게 된 회사의 영업비밀, 고객 정보, 기술 자료 등을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 영업비밀의 범위: '고객 명단', '내부 영업 전략', '소스 코드' 등 보호받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할수록 법적 효력이 강해집니다.
3. 경업금지 의무: 신중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퇴사 후 동종 업계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입니다. 이는 직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 매우 신중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판례에 따르면, 경업금지 조항이 유효하려면 아래와 같은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 보호할 가치가 있는 회사의 이익이 있는가? (단순한 경험이 아닌, 진짜 영업비밀)
- 근로자의 지위가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위치였는가?
- 제한하는 기간과 지역, 직종이 합리적인가? (통상 1~3년 이내, 특정 지역으로 한정)
- 경업금지에 대한 대가(보상)를 지급했는가?
⚠️ 대표님을 위한 경고! "퇴사 후 10년간 국내외 모든 동종 업계에 취업할 수 없다"와 같은 과도한 경업금지 조항은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우리 회사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IV. 잠깐! 우리 회사가 5인 미만이라면?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미만입니다.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일부 조항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주는데, 이는 대표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 구분 | 5인 미만 사업장 | 5인 이상 사업장 |
| 연장/야간/휴일근로 | 가산수당 미적용 | 통상임금의 50% 가산 지급 의무 |
| 연차유급휴가 | 적용 제외 (의무 아님) | 의무 부여 (1년 80% 출근 시 15일 등) |
| 근로시간 제한 | 적용 제외 (주 52시간제 미적용) | 주 52시간 (기본 40시간 + 연장 12시간) 준수 |
| 해고의 제한 | '정당한 이유'는 필요하나, 서면 통지 의무 없음 (구두 통보 가능) | '정당한 이유'와 '서면 통지' 모두 필수 |
| 공휴일 | 유급휴일 보장 의무 아님 | 유급휴일로 보장해야 함 |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아래 내용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
- 최저임금 준수
- 주휴수당 지급 (1주 15시간 이상 근무 시)
- 퇴직금 지급 (1년 이상 근무 시)
- 해고예고수당 지급 (해고 30일 전 예고하지 않았을 경우)
-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보장
💡 대표님을 위한 조언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적으로 연차휴가나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재를 유치하고 팀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계약서에 "우리 회사는 5인 미만이지만 연차휴가 O일을 보장한다"와 같이 회사만의 복지 규정을 명시하는 것은 매우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적 의무를 넘어선 '배려'가 초기 스타트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V. 에필로그: 계약서 너머의 진짜 책임, 4대 보험
첫 직원의 근로계약서에 나란히 서명하고, 한 부를 교부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아이디어만 가진 팀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하나의 '조직'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색하지만 필요한 이 과정이, 앞으로 우리 회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근로계약이 회사와 직원 간의 사적인 약속이라면, 4대 보험은 국가와 맺는 공적인 약속이자, 직원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미지의 영역, '4대 보험'이라는 더 현실적이고 골치 아픈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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